더러운 사대주의의 망령
요즘 성탄 찬송 중의 하나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가사 중 “어둠에 묻힌 밤”이 원문대로 번역되지 않았다고 하여 “어둠이 걷힌 밤”으로 바꾸자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 중에 기가 막힌 것은 이 찬송가의 영어 가사 중 “All is bright”라는 가사를 “어둠에 묻힌 밤”으로 번역한 것은 명백한 오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찬송가의 가사 원문은 독일어이다. 그리고 독일어에는 영어 가사 “All is bright”에 해당하는 개념이 전혀 없다.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독일어 가사는
“모든 것이 잠든 때”(Alles schlaft)이다. 원문 전체를 소개한다.
“Stille Nacht, Heilige Nacht! Alles schlaft, einsam wacht nur das traute hoch heilige Paar. Holder Knabe im lockigen Haar, schlaf in himmlischer Ruh, schlaf in himmlischer Ruh!”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든 것이 잠든 때, 홀로 신실하고 지극히 거룩한 부부만이 깨어있네. 곱슬머리의 귀여운 아기,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이 원문 가사를 우리나라 찬송가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으로, 그리고 가톨릭 성가집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만상이 잠든 때”로 번역하였다.
이 찬송가의 원문 1절의 풍경은 자연스런 밤의 정적 속에 벌어지는 예수 탄생을 아주 소박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뿐이다. 원문의 가사 “모든 것이 잠든 때”의 뉘앙스는 우리 가사 “어둠에 묻힌 밤”이나 “만상이 잠든 때”가 아주 잘 된 번역이다. 영어가사 “All is bright”는 원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돌발적이고 이단적인 번역이다. 미국 사람이 하면 다 옳고 우리의 번역은 틀렸다는 식의 사대주의를 버려야 할 때가 아닌가? 미국식 번역이 엉터리인 것이 어디 한두 개인가? ‘예수’라는 원문대로의 우리 식의 이름에 비하여 ‘지저스 Jesus’는 얼마나 엉터리 번역인가?
문성모 목사<서울장신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