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스크랩] 개신교수도원 소개 - 성빈 수녀원(수도원)

herb49 2010. 12. 27. 16:31

성빈수녀원(聖貧修女院)


‘우연 아닌 우연’으로 섭리하신 하나님의 손길

더 깊은 영성의 바다로 나가려는 열정으로 세워진 수녀원


  젊은 수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수녀원에 들어와서 ‘기도와 노동’ ‘묵상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좋았습니다. 함께 지내는 수녀들도 좋았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삶도 기뻤고 … 모든 것들이 다 축복이었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거룩한 열정, 그게 문제였습니다. 더 깊은 영성의 바다로 가고 싶었습니다. 더 넓은 영성의 세계에서 더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었습니다. 일체의 것들을 ‘다’ 그리고 ‘더’ 버리고, 묵상과 명상만을 할 수 있는 수도의 삶을 더 깊게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두 수녀는 수녀원을 나왔습니다. 두 손에 성경책 한 권만 달랑 든 채로.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열정에 사로잡힌 이들은 두려움도 없었고, 오히려 기쁨만이 충만했습니다. 먼발치로 아는 집사님의 소개로 이들은 강원도 화천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는 시골집으로 갔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고 있는 비어있는 집. 누군가 살다가 버리고 떠난 집. 흡사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을씨년스러운 집. 집을 안내해 주기 위해 동행했던 전도사님이 다른 집사님에게 조심스럽게 했던 말이 우연치 않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참! 미치지 않고서야 어디 이런 집에서 살수 있겠어요!!!”

  그러나 두 사람의 수녀는 그냥 좋았습니다.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매일매일 기도할 수 있어 좋았고, 더 많은 시간동안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두 손에 단돈 일원도 없었던 수녀 두 사람. 그러나 그들은 이곳을 행복한 수도원으로 서서히 바꿔갔습니다.

  하루 일곱 차례의 기도회는 빠짐없이 드려져서, 이 산하에 찬양의 소리와 기도의 묵상이 울려 퍼지게 했고, 이 산 저 산에 피어져 있던 꽃나무들을 빈집에 옮겨와서 심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시골집을 요령있게 정리해서 ‘기도방과 잠자는 방’을 나눠놓았습니다. 산과 들에 피어있는 열매들을 따먹으면서 지냈고, 인근 도시 아파트에 내다버린 가재도구들을 집어다가 빈집을 장식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서 가까이서 빈집 수녀원 소식을 듣고, ‘피정 손님들’이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수녀는 ‘잠자는 방’을 내어주고 기도방에서 밤을 지내우기도 했고, 새벽시간이면 ‘피정 손님들’을 깨울 수 없어서, 아직 밝지 않은 미명(未明)의 들판에서 찬양과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산골짜기의 빈집, 그리고 아직 채 밝지 않는 들판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살아있는 시편’이 울려퍼질 때, 모든 이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직 아침잠을 깨지 못한 피정손님들과 이웃의 시골 사람들, 그리고 시골 골짜기에 살고 있었던 모든 생물들이 거룩한 감동에 잠을 뒤척이곤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피정손님으로 방문했던 이가 수녀님들을 찾아왔습니다. “남의 집을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해도 소용이 없어요. 수녀원이 세워질 땅이 아름답게 장식되어야죠. 이 돈으로 수녀원 부지를 구입하세요.” 손님은 돈 봉투를 지어주고 떠났습니다.

  수녀님들은 분주히 돌아다녔습니다. 기도하면서 수녀원 부지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산자락을 팔려고 마음먹은 마을 어른을 만났습니다. 그가 수녀님들에게 자기 땅을 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6리 13-2. 잡풀이 우거져 있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땅. 수녀님들은 땅 주인과 함께 야산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 보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땅은 수녀원으로서 안성맞춤인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주인은 땅 값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정손님이 놓고 간 금액과 십원 한 장도 틀리지 않는 금액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은 가난했습니다. 수중에 돈이 없었고, 또 돈을 벌려고 애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돈이 들지 않는 범위에서 수녀원을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산과 들에 널려 있다시피 한 ‘무지막지한 돌과 바위들’을 날아다가 수녀원을 장식했고, 앞 뒤 산에 피어난 꽃나무들을 옮겨다가 수녀원 앞 뒤 뜰을 꾸몄습니다. 하루 일곱 차례의 기도회, 성경 묵상과 육체노동 … 수녀님들이 자체적으로 정해 놓은 규칙들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노동’할 뿐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즐겁고 쉽기만한 ‘기도와 노동’.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젊은 수녀 두 사람이 산골에 들어와서는 밤낮 없이 일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그만 체구의 여자들이 장정도 들기 어려운 바위 덩어리를 들고 씨름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때는 이웃들이 수녀원을 찾아와서는 충고하곤 했습니다. “일좀 그만하세요.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 보이는데, 일만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마을 사람들이 수녀들에게 붙인 별명이 ‘석공수녀들’이었을 만큼 일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노동이 기도였음을 마을 사람들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찌어찌해서 수녀원은 세워졌지만, 두 수녀는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때로는 전기세 낼 돈이 부족할 때도 있었고, 인근 화천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올 돈이 없어서, 절반 거리만 차를 타고 오고 나머지 거리는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삶 중에도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전기세 낼 돈이 부족할 때 징수원이 부족한 금액을 대신 내주기도 했고, 택기 기사가 공짜로 수녀님들을 태워다 줄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수녀님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두 수녀님은 배가 고팠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삼립호빵이 모락모락 맛있는 향기를 내뿜으면서,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수녀님들은 거의 동시에 ‘기도 아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 호빵이 먹고 싶어요.” 그때 거짓말 같은 ‘우연’(?)이 일어났습니다. 삼립호빵을 싣고 가던 트럭에서 호빵 한 개가 떨어져서, 수녀님들 곁으로 굴러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습니다. 수녀원 땅을 마련하고, 또 예배당을 짓고, 피정손님들의 처소를 세우고, 함께 살아갈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이 그렇게 ‘우연 아닌 우연’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성빈수녀원(聖貧修女院)은 지금 아름답고 소박하고 감동적인 수녀원으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날이었습니다. 제 아내, 최주환 사모와 제가 강원도 화천의 성빈수녀원을 찾아 떠날 때는 하늘이 높았습니다. 포천시를 거쳐서, 일동면과 이동면을 지나서 백운계곡을 끼고 고갯마루에 올라갔을 때, 조금 시장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선 고갯마루에 있는 휴게소에서 감사수제비를 먹었고, 심호흡을 잠깐 한 다음에 고개를 내려가서 화천으로 달려갔습니다.

  화천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야산에 성빈수녀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정문에서 예배당까지 이어져 있는 20미터 남짓의 작은 나뭇길이 좋았고, 또 식당 밖에 놓여져 있던 장독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독대 위에서 ‘쪼르르 쪼르르’ 떨어지면서 수녀원을 깨워주는 물소리가 최고로 좋았습니다.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시던 솔잎 효소차가 지금도 입 안에서 여운으로 살아있고, 두어 시간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리 내외를 ‘겉으로 웃게, 그러나 속으로 울게’ 만드신 수녀님들의 소박한 표정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녀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식당의 벽에는 미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기도하시는 수녀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이현주 목사님께서 써 주셨다는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거룩한 바람아. 사방에서 불어와 이 동산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로 춤추게 하라.”

  그곳을 떠나기에 앞서 우리는 수녀님들께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곳을 찾은 이들을 축복하시고 ……….” 수녀님의 기도가 계속 이어질 때, 뭔가 시원하고 따뜻한 기운이 제 옆구리를 건드렸습니다. 뭐지? 기도 중에 눈을 떴지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시원하고 따뜻한 기운이 도대체 뭘까?” 지금 그걸 떠올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수녀님들과 또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김부겸).

출처 : 평택대학교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글쓴이 : 하얀쪽배(김주현) 원글보기
메모 :